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제핀 드 보아르네 (문단 편집) === 첫번째 결혼 생활 === 하지만 이 부부의 사이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외젠 드 보아르네|아들]]과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딸]]을 하나씩 낳기는 했지만 남편 알렉상드르는 결혼한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아버지의 내연녀의 조카딸보다는 본인이 직접 선택한 내연녀(...)를 선호했고 아예 집을 나가 사창가를 돌아다녔다. 결국 법원은 남편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별거를 인정했고, 마리 로즈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렇게 생과부가 되는가 싶었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며 그녀는 진짜 과부가 된다. '''남편 알렉상드르가 처형된 것.''' 알렉상드르는 비록 귀족신분이었지만, 미국 독립전쟁에 자원하고, [[프랑스 혁명 전쟁]]에도 장군으로 참전하는 등 비교적 혁명파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불성실한 지휘로 패전을 자초했다는 혐의를 받아 수감되었고, 이후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피해갈 수 없었다. 마리 로즈 역시 투옥되었으나,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풀려난다. 참고로 그녀가 풀려난 건 '''처형 바로 전날'''이었다. 반면 남편은 반동을 불과 4일 앞두고 처형당했다. 게다가 마리 로즈는 감옥살이를 할 당시 만난 감방 동기 [[테레사 탈리앵]]과의 친분으로 총재 정부 아래의 [[파리(프랑스)|파리]] 상류층에 들어가면서 이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드날리며 --테레사 탈리앵과 공유하게 된-- 바라스 총재를 비롯해 수많은 연인을 두었다.[* 그중에는 나폴레옹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라자르 오슈]] 장군도 있었다.] 이 와중에 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와 나폴레옹의 인연을 계기로 나폴레옹과 교류하게 되어[* 다만 이는 후대에 윤색된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로베스피에르파로 간주되어 사실상 실직한 나폴레옹이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러 바라스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다녔으며, 따라서 이 과정에서 이미 바라스의 안방마님 격이었던 조제핀과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었을 것이다.], 결국 얼마 뒤인 1796년에 나폴레옹과 결혼하였다.[* 사실 조제핀의 정부이자 총재 정부의 주역 바라스가 조제핀에게 질리기 시작하고 관계를 정리하면서 대신 구해준 조제핀의 신랑감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는 것이 당대의 세평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바라스를 몰락시킨다.] 나이는 나폴레옹보다 6살 연상이었다. 정말로 인생사 새옹지마. 이때부터 마리 로즈는 역사에 흔히 알려진 조제핀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